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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침묵" 시집 중 가장 마지막편의 시입니다.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
딱 저를 두고 하는 말로 들립니다... 현재 새벽 1시 14분에도 일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정말 게으르죠.......


사랑의 끝판 /한용운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
에그 등불을 켜려다가 초를 거꾸로 꽂았습니다그려.
저를 어쩌나, 저 사람들이 숭보겄네.
님이여, 나는 이렇게 바쁩니다.
님은 게으르다고 꾸짖습니다.
에그 저것 좀 보아,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하시네.
내가 님의 꾸지람을 듣기로 무엇이 싫겄습니까.
다만 님의 거문고줄이 완급을 잃을까 저퍼합니다.

님이여, 하늘도 없는 바다를 거쳐서,
느릅나무 그늘을 지어버리는 것은
달빛이 아니라 새는 빛입니다.
홰를 탄 닭은 날개를 움직입니다.
마구에 매인 말은 굽을 칩니다.
네 네 가요, 이제 곧 가요

Posted by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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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 존재의 뒤편

6 회 | 2010-03-09 | 조회수 1916 |


Letter 06

따뜻한 위로의 편지 고맙습니다. 하지만 답장을 쓸 수 있을까…… 무언가 말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한 자도 쓰지 못하고 깜박이는 커서만 우두커니 바라보곤 했습니다. 동생을 잃은 슬픔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약속된 날짜에 맞추어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 참 가혹한 노릇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색채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흑백의 물결이 하염없이 흘러가는 가슴 한켠에서 누군가 이따금 “The show must go on!"을 외치는 것 같았어요.

그래.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오늘의 슬픔에 대해 쓰자. 마흔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내 동생, 아름다운 영혼 나혜민에 대해 쓰자. 마음을 간신히 일으켜 보았지만, 지난 2주 동안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지금도 모르겠습니다. 새벽 1시 고속도로 순찰대의 전화를 받고 낯선 도시의 병원에 도착했을 때, 동생의 몸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 있었습니다. 밤길에서 교통사고로 숨을 거두는 순간 얼마나 춥고 외로웠을까.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 손끝에 만져지는 냉기와 어머니의 오열하는 모습 사이에서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동생의 눈을 다시 한번 쓸어내리고 사망진단서를 기다리는 일밖에는…….

장례를 마치고 동생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다이어리 첫 장에 적힌 짧은 글을 발견했습니다. 문태준 시인이 천양희 시인의 시 <뒤편>에 붙인 단상이었습니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을 감싸 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뒤편에 슬픈 것이 많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비 오기 전 마당을 쓸 듯 그의 뒤로 돌아가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 주는 일이다.”

이 말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존재의 뒤편이 있고, 슬프고 남루한 것들은 주로 그 뒤편에 숨겨져 있기 마련이지요. 진정한 사랑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그곳까지 눈과 귀와 손과 발을 정성스럽게 들여놓는 일이라는 것을 동생은 잘 알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런 마음과 태도로 길지 않은 삶을 살았던 듯합니다. 장례식장에 찾아와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가족은 그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는지, 얼마나 품이 깊고 온화한 사람이었는지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존재의 뒤편을 남김없이 보여 주는 일이라면, 그가 남긴 뒤란은 소박하고 정갈했습니다.

동생의 책꽂이에는 오래된 번역시집 몇 권이 꽂혀 있기도 했습니다. 그중에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기도시집》도 있더군요. 무어라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그 시들을 소리 내어 읽는 일은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기도였습니다.

“제 눈빛을 꺼 주소서, 그러나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구절을 발견하고는 비석 새기는 사람에게 그 문장을 묘비명으로 새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육체의 눈은 감았지만 영혼의 눈은 새로운 영원을 향해 열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그가 남긴 뒷마당을 쓸어 주는 마음으로 동생을 보내고 광주로 돌아오니, 벌써 개강을 했습니다. 학생들의 웃음소리,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벨, 계속되는 강의와 회의, 쌓이는 서류들……. 이 소음과 먼지 속에 살아 있다는 것이, 살아야 한다는 것이, 문득문득 낯설고 아득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가 죽음으로 기우는 마음을 삶으로 끌어당겨 주름을 조금씩 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서 꽃소식이 들려오는데, 내일은 말씀하신 대로 가까운 들판에라도 나가 홍매 청매를 찾아볼까 합니다. 동생이 묻힌 흙 기운 속에서 돋은 꽃이니 여느 해보다 유난히 붉고 푸르겠지요. 그 꽃빛 속에는 제 동생의 서늘한 눈빛도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광주에서 나희덕

나희덕 / 1966년 충남 논산에서 나서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 김수영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조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이다.

[출처]http://www.positive.co.kr/good/69619_48_126
Posted by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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