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

52024  이전 다음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웃는 게 남는 장사(뽀빠이 이상용) 

 

부자는 맨션에서, 빈자는 맨손으로
부자는 헬스가고, 빈자는 핼쑥하고 
부자는 사우나에, 빈자는 사우디로
그저 글자 한자 차이일 뿐이죠

여러분!

어영부영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사람이 그렇게
갈망하던 내일입니다.
어찌 헛되이 하루를 보내시렵니까. 저처럼 짧고
못생겼어도 이렇게 하루를 아깝고 달콤하게 보내려고
애쓰는데 말입니다. 억지로 웃으면 전신이 쑤시고
담이 결려 오나 정말로 웃으면 헬스클럽 다니는
것보다 좋습니다.

어느 사슴목장을 찾았습니다. 주인 어르신과 얘기를
나눴지요.“사슴이 몇 마리나 되나요?
289마리요.
“그럼 어르신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한 80넘었는데, 끝자리는 잘 모르고 살고 있다오”
“아니, 사슴 숫자는 정확히 알면서 자기
나이는 모르십니까?
“그거야 사슴은 훔쳐가는 놈이 많아서 매일
세어보기 때문이고 내 나이야 훔쳐가는 놈이
없어서 그냥 산다오.

나이란 전국민이 자동으로 한 살씩 매년 먹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서너 살씩 더 먹는
사람도 있지요.
어떤 사람은 맘이 착해서 서너 살씩 뚝 떼어서 남에게
그냥 주는 사람도 있어요.
같은 나이인데도 더 늙어보이는 사람도 있고 젊은
사람이 있지요.

장수마을에 갔더니 106세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장수 비결이 뭡니까?
“안 죽으니깐 오래 살지!
“올해 몇 살이세요?
“다섯 살밖에 안 먹었어.
“네? 무슨 말씀이신지….
100살은 무거워서 집에다 두고 다녀.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생각이 장수의 비결이란
얘기지요.

105
세 어르신과 시골 장터를 걷는데,
앞에서 90세가 넘어 뵈는 할머님이 걸어오십니다.
“형님, 저 할머니 한번 사귀어 보시죠?
70 넘어 뵈고 예쁘시구먼.
“뭐야? 이놈이….
저 늙은 할망구 데려다 뭔 고생하라고.

그렇습니다. 할머님이 그 얘길 들었으면
자살하셨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전 그 장수 어르신의 끝 말씀이 제 생활의 지표가
되고 도움이 됩니다.
“저, 어르신. 105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르신
욕하고 음해하고 그래서 열 받았을 텐데,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이래 오래 사세요?
우리 같으면 못 참고 스트레스받아 미쳐
죽었을 텐데요.

그랬더니 너무나 간단한 답을 주셨다.

“그거야 쉽지. 욕을 하든 말든 내버려뒀더니
다 씹다가 먼저 죽었어. 나 욕하던 녀석은 세상에
한 놈도 안 남았어.

사람들은 저보고 ‘웃음 공장’ 이라고 합니다.
저는 정말 웃음을 제조해서 싼값에 팔지요.
요즘 같이 웃을 일 없이 허탈감만 주는 세상에서
저야말로 애국자 아니겠습니까?

방송국 개그맨들이 파업을 하려고 한답니다.
왠지 아세요? 정치인들이 너무 웃겨서 개그맨들이
설 자리가 없기 때문이랍니다.

어느 날 한강변에서 모기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국회의사당 근방에 사는 이 모기는 빨대가
더 길었습니다.
왜냐구요?
국회의원들의 얼굴이 두꺼워 피 빠는데 힘들답니다.

누굴 부러워하지 마세요. 재벌들 다 돌아가시죠?
권력가들 다 돌아가시죠?
차 좋은 거 타는 사람도 언젠간 다 죽죠?
죽는 게 사실이라면 사는 동안에 즐겁게 사셔야
할 거 아닙니까?

별 차이 아닙니다. 부자는 회원권으로 살고,
빈자(貧者)는 회수권으로 살고.
부자는 맨션에서 살고, 빈자는 맨손으로 삽니다.
부자는 사우나에서 땀 빼고,
빈자는 사우디(사우디아라비아)에서 땀 빼고,
부자는 헬스클럽에 다니고,
빈자는 핼쑥한 얼굴로 다니고,
부자는 변기에 앉아서 일 보나, 빈자는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봅니다.
잘 보세요. 글자 한자 차이일 뿐 별로 불편할 것 없고
차라리 빈자가 낭만적이고 살맛 나지요.

저는 이렇게 작아도 주눅들지 않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 중에 중국의 덩샤오핑이
있습니다. 저보다도 3㎝가 작으신데요.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하늘이 무너져도 난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키 큰 사람이 먼저 다친다.

아주 속 시원한 말씀이죠.
배가 많이 나오신 분들도 걱정 마세요.
걸어가다가 차가 와서 받아도 배가 먼저
닿기 때문에 에어백 역할을 하니까 가운데
중요한 건 끄떡 없을 테니까요.

고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저희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어보셨습니다.
“영철이 커서 뭐 될래?
“네 저는 우주과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영숙이는?
“저는 여자니까 애 낳고 평범하게 살래요.
“상용이는?
“저는 큰 꿈은 없고요. 영숙이가 애 낳는데
협조하고 싶습니다.

솔직하게 살면 사는 재미가 솔솔 납니다.
요즘 헌혈하는 사람이 적답니다. 길에서
헌혈하라고 권하면 뿌리치면서 핑계가 많습니다.
바람둥이에게 헌혈하라면 “어젯밤에 쌍코피가
나서 피가 부족하다”고 하죠.
구두쇠는 “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난다”
고 하고요.
골초들은 “내 피를 어떻게 임산부나 애들에게
주겠느냐”고 도망가고, 나이 드신 분들은
“내 피는 유통기간이 지나서 못 써!
라고 한답니다.

밤에 잠자리도 나이에 따라 완연히 달라집니다.
20
대에는 부부가 포개져 자고,
30
대엔 부부가 마주 보고 자고요.
40
대에는 나란히 천장보고 자고,
50
대엔 등 돌리고 잡니다.
60
대에는 다른 방에서 각자 자고,
70
대에는 어디서 자는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80 이 넘으면 한 분은 방에서 주무시고
한 분은 산속에서 주무시게 되니,

지금이라도 꼭 껴안고 한방에서 주무세요.
여러분은 지금 행복하신 겁니다.
살아서 오늘 아침에도 신문을 볼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어제 돌아가신 분들이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을 지금 하고 계시는 셈이니까요.

, 웃으면서 출발!!!




 
@ 많은 카페와 블로그에서 인용하고 계신 글을 퍼왔습니다.^^
Posted by 나들이
|

지난해 췌장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랜디포시라는 40대 후반의 교수가
미국 카네기 멜런대에서 했던 마지막 강의는
이런 메세지를 담고 있다.
 
- 절대 포기하지 마라, 벽에 부닥치거든 그것이 절실함의 증거임을 잊지마라.
- 삶을 즐겨라, 즐길수록 삶은 내 것이 된다.
- 솔직하라. 그것이 삶에서 꿈을 이루게 한다.
- 가장 좋은 금은 쓰레기통의 밑바닥에 있다. 그러니 애써 찾아라.
- 당신이 뭔가를 망쳤다면 사과하라. 사과는 끝이 아니라 다시 할 수 있는 시작이다.
-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어라. 그만큼 삶이 풍요로워 진다.
-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라. 감사 할수록 삶은 위대해 진다.
- 준비하라.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때 몰려온다.
-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다. 그사람의 좋은 면을 발견하라.
- 가장 어려은 것은 듣는 일! 그러니 사람들이 피드백을 해줄때 그것을 소중히 여겨라. 거기에 삶의 방향과 해답이 있다.


랜디포시는 자신이 암에 걸린 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다가오는 죽음마저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 들였다.

더 이상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미련이나 후회, 절망도 일찍감치 버렸다.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살며 끝까지
사랑하고자 몸부림쳤다.
이미 그의 강의는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 수천명의 사람을 감동시킨바 있다.

[출처 : 윤치영의 아침햇살]

Posted by 나들이
|

레고

Pictures 2008. 5. 8. 19:24
얼마전 아들녀석이 받은 레고를 대상으로 찍은 사진 두장입니다. (무보정, Resize)

다른 얘기이지만, D70과 17-55mm/F2.8 렌즈는 아무래도 칼핀인듯...ㅋㅋㅋ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나들이
|
모래위의 발자국 (Footprint in the sand)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신과 함께 해변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저편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상영되고 있었다.
각각의 장면마다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두 줄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신의 발자국이었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신이 언제나 그와 함께 걸었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 때쯤 그는 문득 길 위에 있는
발자국들이 어떤 때는 단지 한 줄밖에 나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또 그것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시기마다 그러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신에게 따졌다.

"신이시여, 당신은 언제나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들을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었습니다.
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당신은 정작 필요할 때면 나를 버렸습니까?"

신이 말했다.

"내 소중한 사람아, 난 그대를 사랑하며 결코 그대를 떠나지 않았다.
그대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마다 너의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음은
그때마다 내가 그대를 안고 걸어갔기 때문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나들이
|
예전 예병일의 경제노트에서 소개해 주었던 Steve Jobs의 스탠포트 졸업식 연설문입니다. 조금 길죠?^^

망해가고 있던 Apple을 다시 일으키고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러면서도 Bill gates처럼 언제나 "지금이 위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36번째 생일을 맞아, 언제나 오늘이 시작이며 마지막이도록 살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 나약한 인간은 끊임없이 반복하는 후회와 회한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서... 말씀달력(바오로딸 출판)에서 오늘(1월 11일) 이런 구절을 소개하네요...^^ 제 생일날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1요한 5,11)
God gave us eternal life. (1Jn 5,11)


- 나들이 -




Stanford Report, June 14, 2005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 이것은 2005년 6월 12일에 애풀컴퓨터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CEO인 스티븐 잡스의 졸업식 연설문입니다. )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저는 오늘 전세계에서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스텐포드 대학 졸업식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진실을 말하면, 이번이 대학 졸업식에 가장 가까이 온 것입니다. 오늘 저는 제 삶에서 3가지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첫번째 얘기는 점들을 연결하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저는 리드 컬리지를 첫 6개월동안 다닌 후 자퇴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퇴하기 전에 그 후 18개월동안 청강생으로 주위에 머룰렀습니다. 왜 제가 자퇴를 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제가 태어나기 전 내 어머니(생모)는 젊고, 결혼도 하지 않은 대학 졸업생이어서 저를 입양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 졸업자에 의해 양자삼아주기 강하게 원하셨고, 태어나면 변호사와 그의 부인에게 입양되도록 모든 것이 준비되었습니다. 내가 출생했을 때 그들이 여아를 정말 원한다는 결정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말이죠)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17년 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순진하게 스텐포드만큼이나 비싼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계층인 부모님의 모든 돈이 내 대학 등록금으로 소진되었습니다. 6개월 후 저는 대학에서 가치를 발견치 못했습니다. 저는 제가 뭘하고 싶은지, 어떻게 대학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울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에서 내 부모님이 전 생애를 통해 벌었던 모든 돈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퇴를 결심했고, 모두 잘 될 것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순간은 무척 두려웠었지만, 뒤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한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학교를 그만둔 그 순간 저는 관심 없었던 필수 과정들을 이수하지 않을 수 있었고, 관심 있어 보이는 과정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모두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숙사도 없었고, 친구 집의 바닥에서 잠을 잤고, 먹을 음식을 사기위해 콜라병을 모아 5센트씩 모았고, 매주일 밤에 일주일에 한번 훌륭한(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헤어 크리쉬나 사원까지 기꺼이 7마일을 걷곤했습니다. 그 일을 매우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름으로 나를 당황하게 만든 많은 것들이 후에는 가치없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그 당시에 리드 대학은 우리나라에서 (아마도) 최고의 서법강좌를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전 캠퍼스의 모든 포스터, 모든 서랍의 라벨은 아름답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제가 자퇴하고 정규과정을 수강하지 못했기 때문에 서법을 어떻게 하는지 배우기 위해서 서법 강좌를 수강하기로 결정했고, 저는 serif[(M, H등의 글자에서상하의획에 붙인) 가는장식선, 세리프 ]와 san serif 서체를 배웠습니다. 즉 다른 글자 조합간의 총 공간을 변경하는 것에 관해, 무엇이 서체를 멋지게 만드는 가에 대해 배웠습니다. 이것은 과학이 따라잡을 수 없는 아름답고, 역사적이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저는 그것에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러한 어떤 것도 내 삶에서 실제적인 적용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처음 메켄토시 컴퓨터를 처음 디자인할 때, 그것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에 모든 것을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맥은 아름다운 활자(typography)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대학에서 그 과정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맥은 결코 다양한 서체와 균형 잡힌 자간을 띄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윈도우스가 맥을 모방했기 때문에, 개인용 PC가 글자체를 가지지 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제가 학교를 그만두지 않았다면, 저는 결코 이러한 서체 강좌를 수강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들은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후 뒤쪽을 돌아보니 아주 아주 명료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점들을 앞쪽을 보면서 연결할 수 없습니다. ; 점들을 뒤쪽을 보면서만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들이 어느 정도 당신의 미래에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인가를 신뢰해야 합니다. 즉 실질, 운명, 삶, 카르마(인연, 숙명) 그 무엇이든. 이런 접근법은 결코 저를 낙담시키지 못했고, 내 삶의 모든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두번째 얘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I was lucky ?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운이 좋았습니다. 저는 제가 즐겨할 수 있는 일을 빨리 발견했습니다. Woz와 저는 20세에 아버지의 차고에서 APPLE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10년만에 애플은 차고의 2명에서 4000명의 직원을 가진 20억불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최상의 창조물 -매킨토시-을 1년 더 빨리(29세에) 출시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당신이 만든 회사에서 어떻게 해고될 수 있냐구요? 글쎄요, 애플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는 저와 회사를 잘 경영할 수 있는 매우 재능있는 누군가를 고용했고 첫해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젼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결과적으로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저는 나이 30세 해고를 당했습니다. 아주 공식적으로 해고를 당한 것이죠. 내 전 젊음을 집중했던 것은 사라졌고, 파괴되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저는 수개월 동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전 세대 사업가들을 낙담시킨 것처럼 즉 내게 전달된 바톤을 떨어뜨린 것처럼 느꼈습니다. 저는 데이빗, 패커드과 밥 로이스를 만나서 일을 그르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공적으로 실패했고 심지어 벨리(실리콘?)에서 도망칠 생각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천천히 제게 새벽이 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제가 한 것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련의 사건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거절당했지만 여전히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저는 당시에는 알지 못했지만 애플에서 쫓겨난 것은 저에게 있어 가장 최선의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다시 시작하는 사람의 가벼움으로 바뀌었고, 모든 것에 대해 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저를 제 삶에서 가장 창의적인 기간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했습니다. )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다음 5년 동안, 저는 NeXT라는 회사와, Pixar라는 또 다른 회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부인이 된 굉장한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Pixar는 세게 최초 Computer animated feature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창조해냈고, 현재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니션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주목할만한 일련의 변화로 애플은 NeXT사를 샀고, 저는 애플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NeXT에서 개발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에 핵심에 있습니다. 그리고 로렌스와 저는 멋진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만약 제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을꺼라고 확신합니다. 지독하게 쓴 약이었지만 저는 환자에게 그런 약이 필요한 것임을 압니다. 때때로 삶이 당신의 머리를 벽돌로 치게 됩니다.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저는 저를 계속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것이 제가 한 것을 사랑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으십시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일에도 진실하십시오. 여러분의 일이 삶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진정으로 만족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가 믿는 일을 하는 것이 위대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계속해서 찾으십시오. 안주하지 마세요. 마음의 문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발견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위대한 관계처럼, 세월이 흐르면 점점 좋아지게 됩니다. 찾을 때까지 계속 찾으시고 안주하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제가 17세였을 때 “매일 매일을 당신의 마지막 날처럼 사세요, 그러면 언젠가는 당신은 가장 확실하게 내가 옳았어”와 같은 인용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제게는 인상적이었고, 그 이후로 지난 33년동안 저는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오늘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고자 하는 것을 하길 원하는가?”라고 자문합니다. 그리고 연속으로 많은 날 동안 “아니오”라고 대답하게 될 때, 저는 무엇인가를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압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즉 제가 삶에서 큰(중요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우연하게 마주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것 - 외부적인 기대들, 자신감, 창피함 또는 실패의 두려움- 이런 것들은 죽음의 면전에서 진실로 중요한 것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곧 죽게 될꺼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여러분이 뭔가를 잃게 될꺼라는 생각의 덫을 피하게 하는 제가 아는 최선의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벗었고, 마음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1년전쯤, 저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오전 7:30에 정밀조사를 받았고, 분명하게 췌장에 종양이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심지어 췌장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이것은 치료할 수 없는 형태의 암이라는 것을 말해줬고, 저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수 있음을 기대해야 했습니다. 제 의사는 집에 돌아가서 일들을 정리하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의사의 죽음에 대한 준비절차였습니다. “그렇게하는 것은 단지 수개월내에 제가 앞으로 10년동안 자녀들에게 하려고 했던 모든 것을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것을 완벽하게(아래에서 위까지)해서 가족에게 가능한 쉬운 것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그런 진단을 받고 하루종일 보냈습니다. 그날 저녁 저는 검사를 했습니다. 즉 목으로 들어가서 위를 통해서 창자속으로 들어가는 내시경을 했습니다. 제 췌장에 바늘을 넣어서 종양으로부터 세포 몇개를 취했습니다. 저는 차분했지만 함께 있던 아내는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검사하면서 소리치기 시작했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아주 특이한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현재 건강합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이것이 제가 죽음에 직면했던 가장 가까운 것이었고, 이것이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가장 가까웠던 것이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통해서, 저는 현재 여러분께 죽음은 유용한 것이지만, 순수하게 지적 개념이었을 때보다 좀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치 않습니다. 심지어 천국을 가길 원하는 사람조차도 죽어서 그곳에 도달하길 원치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누구도 비켜갈 수 없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은 삶의 유일한 최고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삶을 변화시키는 대리인입니다. 그것은 새로운 것들을 위해 길을 만들기 위해 오래된 것들을 치우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새로운 것은 여러분입니다. 그렇지만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어느날 여러분은 점차 오래된 것이 되어 치워지게 될 것입니다. 너무 극적인 것 같아 미안하지만 완전한 사실입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여러분의 시간은 제한되어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어떤 사람의 삶을 사는 것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결과로 살아가는 독단에 빠지지 마세요. 내면의 소리를 소멸시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허락하지 마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은 이미 어느 정도 여러분이 진정 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제가 어렸을 대 “The Whole Earth Catalog"라고 불리던 놀라운 출판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우리세대에 바이블과 같았습니다. 그 출판물은 여기서 멀지 않은 Menlo park의 Stewart Brand라는 분에 의해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거기에 그의 시적인 솜씨를 더해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이때는 개인용 컴퓨터와 데스크탑으로 출판되기 이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출판물은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모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종이 형태로 만들어진, 구글이 사용되기 35년 전의 종이형태의 구글이었습니다. 이상적이었고 간결한 도구와 위대한 개념들이 흘러넘쳤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스튜터트와 그의 팀은 “The Whole Earth Catalog"를 수차례 발행했고, 그 과정을 개설하면서 최종본을 발행했습니다. 그 때가 1970년대 중반이었고 저는 여러분의 나이였습니다. 그 최종본의 뒤쪽 커버에는 이른아침 시골 길 사진이 있었고, 만약 당신이 모험심이 강했더라면, 히치하이킹하는 당신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그림 아래에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라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발행을 마치면서한 고별 메시지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항상 내 스스로를 그렇게 되길 바랬습니다. 그리고 현재 졸업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여러분이 그렇게 되길 바랍니다. 배고픈 채로, 어리석은 채로 머물라. 고맙습니다.)

춘천에서 경제노트 가족 김현중

[출처] 예병일의 경제노트 (http://www.econote.co.kr/event/content.asp?nid=35258)
Posted by 나들이
|

'고락' - 김소월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뿌리만 보지 말고서
때로는 고개 들어 사방산천의
시원한 세상풍경 바라보시오

먹이의 달고 씀은 입에 달리고
영욕의 고와 낙도 맘에 달렸소
보시오 해가 져도 달이 뜬다오
그믐밤 날 궂거든 쉬어 가시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숨차다 고갯길을 탄치 말고서
때로는 맘을 눅여 탄탄대로의
이제도 있을 것을 생각하시오

편안이 괴로움의 씨도 되고요
쓰림은 즐거움의 씨가 됩니다
보시오 화전망정 갈고 심으면
가을에 황금이삭 수북 달리오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물속에 몸을 던진 몹쓸 계집애
어쩌면 그럴 듯도 하긴 하지만
그렇지 않은 줄은 왜 몰랐던고

칼날 위에 춤추는 인생이라고
자기가 칼날 위에 춤을 춘 게지
그 누가 미친 춤을 추라 했나요
얼마나 비꼬이운 계집애던가

야말로 제 고생을 제가 사서는
잡을 데 다시 없어 없나부지요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길가의 청풀밭에 쉬어 가시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뿌리만 보지 말고서
때로는 춘하추동 사방산천의
뒤바뀌는 세상풍경 바라보시오

무겁다 이 짐을랑 벗을 겐가요
괴롭다 이 길을랑 아니 걷겠나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은
보시오 시내 위의 물 한 방울을

한 방울 물이라도 모여 흐르면
흘러가서 바다의 물결 됩니다
하늘로 올라가서 구름 됩니다
다시금 땅에 내려 비가 됩니다

비 되어 나린 물이 모둥켜지면
산간엔 폭포 되어 수력전기요
들에선 관개 되어 만종석이오
메말라 타는 땅엔 기름입니다.

어여쁜 꽃 한 가지 이울어 갈 제
밤에 찬이슬 되어 추겨도 주고
외로운 어느 길손 창자 주릴 제
길가의 찬 샘 되어 누꿔도 주오

시내의 여지없는 물 한 방울도
흐르는 그만 뜻이 이러하거든
어느 인생 하나이 저만 저라고
기구하다 이 길을 타발켰나요

이 짐이 무거움에 뜻이 있고요
이 짐이 괴로움에 뜻이 있다오
무거운 짐 지고서 닫는 사람이
이 세상 사람다운 사람이라오

Posted by 나들이
|
저의 일십팔번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1. 국화꽃향기 (2003)

  영화는 본 기억이 없고, 그저 음악만 좋아했었습니다... 혹자들은 그저 눈물나게만 만드는 영화라고 하시지만... 저는 그런 영화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고... 어쩔때는 그렇게라도 실컷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갖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제 한번 봐야겠네요. 장진영, 박해일 모두 참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09.9.1 장진영씨가 위암으로 사망했습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의 인상이 매우 크게 남아 있는... 위에서 얘기하던 것처럼 정말 괜찮은 배우인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국화꽃향기포스터


2. 복면달호 (2007)

영화도 보았는데... 요새 한참 연습 중인 노래입니다. '이차선다리'

이 영화에 대해서 말들은 많지만, 나름 차태현의 순수한 코메디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노래실력이 좀 떨어지지만(-_-;;), 이소연의 '비내리는 밤'도 노래는 참 좋네요... 아주 맛깔스럽다는....^^



[사진출처] http://www.cine21.com
Posted by 나들이
|
스캇 펙 박사의 저서 '아직도 가야할 길'에서 인용하던 글... 이 부분으로 그 책을 읽게 되었었다. 많은 생각과 현실을 일깨워 준 좋은 책이었다.




- 칼릴 지브란 -


  당신의 아이는 당신의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그 자체를 갈망하는 생명의 아들, 딸이다. 그들은 당신을 통해서 태어났지만 당신으로부터 온 것은 아니다. 당신과 함께 있지만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사랑은 줄지라도, 당신의 생각은 줄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들의 육신은 집에 두지만, 그들의 영혼은 가두어둘 수 없다. 왜냐면 그들의 정신은 당신이 갈 수 없는 미래의 집에 살며, 당신의 꿈 속에는 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들을 애써 닮으려해도 좋으나, 그들을 당신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려고 해선 안된다. 왜냐면 인생은 거꾸로 가는 것이 아니며 과거에 머물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당신은 활이 되어 살아 있는 화살인 당신의 아이들을 미래로 날려보내야 한다. 사수는 영원의 길 위에 있는 표적을 겨냥하고 하느님은 그 화살이 날렵하게 멀리 날아가도록 그 분의 능력으로 당신의 팔을 구부린다. 사수의 손에 들어간 힘을 당신은 기뻐하리라.
왜냐면 하느님은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그 자리에 있는 활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Posted by 나들이
|

크리스마스 풍경

Pictures 2007. 12. 27. 13:24
지난 일요일에 대전 시내구경가면서 찍은 사진들입니다. 역시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는 곳에서 즐겨야 제맛이더라구요.^^

대전시청역사에 있던 트리
사용자 삽입 이미지


중구청 근처의 루미나리에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전의 자랑(?) 성심당 안에서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나들이
|
D70에 끼워서 주로(거의 대부분, 99%^^) 사용하는 렌즈의 모습입니다.
17-55mm, F2.8G 표준줌렌즈...

85mm F1.8 단초점렌즈도 있으나... 갈아낄 일이 별로 없네요.

이거 말고 최근에 24-70mm, F2.8G가 출시되었는데, 병행수입품 가격만 190만원 수준이네요... 과연... 필요할까요? 55mm와 70mm의 차이라...
사실, 이 55mm 초점거리는 디지털 기준으로, 35mm 필름으로 환산하면 약 82.5mm니까 웬만한 줌은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17mm가 갖는 각도는 상당해서, 보통의 엘레베이터 안에서 찍어도 잘 커버하는 각을 가집니다.^^


Nikkor 17-55mm 2.8G DX


아래는 렌즈 사양표.

렌즈 구성 10군14매 (ED렌즈 3매, 비구면 렌즈 3매 포함)
화각 79° ~28° 50'(D2H/ D1시리즈/ D100/D70 장착시)
초점거리 눈금 17, 20, 24, 28, 35, 45, 55mm
조리개 날개매수 9매 날개(원형 조리개)
최소조리개 22
최단촬영거리 0.36m(초점거리 35mm시)
최대촬영배율 1 / 5배
줌 작동방식 회전식
매크로기능 없음
포커스제한/전환스위치 없음
M / A 모드 있음
포커스 Lock 버튼 없음
무게 (약) 755g
최대지름×길이

(첨단부터 바요네트 기준면까지)

(약) 85.5×110.5 mm
77mm 스프링식
후드 HB-31 (기본제공)
케이스 CL-1120   (기본제공)
삼각자리 없음
전측 외부 필터 설치범위의 회전 없음
전면외부 부착 필터사이즈 77mm
끼워넣기식 필터사이즈 없음
내장 또는 후부 필터 없음
원편광 필터 사용가능(지근 거리측에 약간의 그림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음)
원편광 필터 II 사용가능. 전용후드 HB-31장착의 경우에도 사용가능(근접촬영시 약간의 그림자가 생기는 경우가 있음)
TC-201S 사용불가
TC-301S 사용불가
TC-14AS 사용불가
TC-14BS 사용불가
TC-20E/20E II 사용불가
TC-17E II 사용불가
TC-14E/14E II 사용불가
적외선 지표 없음
부속품 앞캡LC-77, 뒷캡LF-1, CL-1120, Bayonet 후드HB-31
조리개 링의 없음
거리 눈금 있음
비고 AF-S DX Zoom Nikkor ED 17-55mm F2.8G (IF)의MTF성능곡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니콘이미징코리아 상품설명 (http://www.nikon-image.co.kr)
Posted by 나들이
|

Love actually

잡동사니 2007. 12. 15. 09:49
저도 참 재미있게 본 본 영화입니다. 연말과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다시 생각이 나네요.

@ 편집하신 분이 누군지 찾을 수가 없어서 게재하지 못합니다. 이해하여 주십시요.^^
@@ 아, Love actually 판권사에도 신고해야 하나? -_-;;
@@@ 근데, 솔직히 이거 유부녀와 총각 간의 불륜 아닌가? 흠흠...



사용자 삽입 이미지
Posted by 나들이
|